재미, 두려움, 운명

SEASON 1, EPISODE 7 :

발망의 용감한 전쟁 영웅: 지네뜨 스파니에(GINETTE SPANIER)

발망 아뜰리에의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소규모 팀의 한 핵심 멤버로 하우스가 급격히 성장했던 이 중요한 시기를 지휘했던 한 인물의 삶과 일에 초점을 맞추며 세기 중반 발망의 활동에 대해서도 약간 설명할까합니다. 지네뜨 스파니에(GINETTE SPANIER)

하우스의 첫 디렉터, 첫 발망 디렉터인 스파니에는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발망의 소매 전략을 능숙하게 이끌어온 매우 노련한 사업가였습니다. 스파니에가 어느정도 유명인사였던 이유는 그녀와 피에르 발망의 패션 길잡이를 따르던 세계 최고의 연극, 영화 및 음악 스타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파니에의 명성에는 그녀의 베스트 셀러 회고록 시리즈의 성공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자서전은 스파니에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놀라운 인생 스토리는 1972년 방송 "This Is Your Life” 에서 언급했고 오늘 팟캐스트를 시작하면서도 썼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네뜨 스파니에는 "재미, 두려움, 운명"의 삶을 살았습니다.

BALMAIN PODCAST

설립 초기에 하우스의 디렉터로서 지네뜨 스파니에는 전후 발망의 성장과 관행 및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피에르 발망 및 그의 디자인 팀과 함께 매우 긴밀히 일했고 각 시즌 컬렉션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하우스의 소매 팀을 감독하고 하우스의 가장 중요한 고객들과 관계를 친밀하게 쌓아가는 일도 했습니다. 그녀가 유명인사와 친해지는 것을 굉장히 사랑하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유명인사들과 그녀가 맺은 우정은 하우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되어주었습니다.

명품 오뜨 꾸뛰르에 대한 그녀의 일과 당시 주요 배우, 작가 및 가수와 쌓았던 친분은 확실히 세 편에 걸친 그녀의 자서전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네뜨 스파니에를 진정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전쟁시기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놀라운 용기와 영웅적 행동입니다.

프랑스 태생의 영국인인 스파니에와 그녀의 프랑스인 남편인 폴 에밀 세이드만(Paul-Emile Seidmann) 박사는 둘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전과 생존을 위해 나치가 프랑스 수도를 점령하기 시작한 직후 파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숨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해 4년동안 이 지방에서 저 지방으로 떠돌아다니며 용감한 레지스탕스와 농민, 시골 마을 사람들의 보호 속에 4년이 넘는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그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롭게 해방된 파리에 도착하게되면 연합군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도록 자신들도 일익을 담당하리라 결심했습니다. 폴-에밀 세이드만은 새로운 프랑스 임시 정부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죽음의 수용소와 노예 노동 공장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강제 추방자들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을 총괄했습니다.

스파니에는 미군과 계약을 맺어 젊은 학생들을 모집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훈련된 비서, 교환원, 조수 및 번역가로 구성된 이중 언어 군단을 구축하여 연합군이 프랑스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점점 더 진군하고 마침내 독일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베를린이 함락되고 최종 승리가 보장된 후에도 스파니에는 연합군을 계속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네뜨 스파니에는 뉘른베르크 재판을 위해 자원했습니다. 승리한 동맹국들이 진행한 이 역사적인 재판은 포로로 잡힌 독일의 나치 지도자들을 홀로코스트 및 기타 전쟁 범죄를 계획하고 수행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뉘른베르크는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이어진 일련의 군사 재판이었습니다. 스파니에는 연합군 검사를 위해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서포트 직원을 만들고 그 기능을 감독했습니다.

연합군을 지원하고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전쟁 범죄자들을 기소하는 데 도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아 스파니에는 트루먼 대통령이 미국과 그 동맹국이 전쟁에 힘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민간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미국의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인터뷰와 강의, 저술을 통해 나치로부터 도주하고 기소하는 데 보낸 오랜 세월이 그녀에게 영원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파리에서 다시 파리로 돌아온 후에도, 뉘른베르크 재판이 끝나고 한참 지난 후에도, 그리고 발망의 일상적인 업무를 처음 감독하기 시작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전쟁 중에 배운 중요한 교훈을 언제나 잊지 않았습니다.

발망의 첫 번째 디렉터

그녀의 첫 번째 자서전 "It Isn’t All Mink,"에서 지네뜨 스파니에는 발망 디렉터의 역할에 무엇이 따르는지 설명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감독은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는 회사 전체의 모든 인간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업실의 일은 디렉터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특정 드레스가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디렉터의 일이기 때문에 작업실에 있는 피팅 담당자와 협력해야 합니다. 가령, 드레스를 선보일 두 모델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베굼 아가 칸(Begum Aga Khan)의 귀에 스쳐지나간다면 그것도 디렉터의 잘못입니다. 두명의 셀러가 고객을 두고 다투며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고객에게 들린다면 그것도 디렉터의 잘못이죠. 고객이 청구서를 지불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디렉터의 잘못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일들이 24시간 내내 존재하죠.” 

It Isn’t All Mink
Collins 1959
V&A Publishing 2017

발망 캐빈

전후 파리의 유명 오뜨 꾸뛰르 하우스들은 각 하우스의 상주 모델팀 전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하우스에서 하루종일 일하던 이 여성들은 각 시즌마다 특정 디자인 시리즈 및 그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고 피팅된 꾸뛰르 디자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동일한 하우스 모델들이 매일 아침과 오후에 고객을 위해 하우스가 선보이는 데일리 쇼도 구성하게 됩니다.

이 모델들은 하우스의 "캐빈"이라고 불리던 것의 한 부분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캐빈은 프랑스어로 말 그대로 "캐빈"을 의미하며 모델이 한 꾸뛰르 디자인에서 다음 디자인으로 갈아입는 백스테이지 룸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각 꾸뛰르 하우스에서 쓰는 독특한 모델 그룹을 뜻하는 말로 비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파리 꾸뛰르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피에르 발망도 자신만의 고유한 캐빈인 발망 캐빈을 갖고 있었습니다. 각 시즌마다 약 10~12명의 여성이 발망 캐빈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하우스에 있는 모든 여성들이 하우스만의 독특한 룩과 정신을 반영하는것은 비단 발망 뿐 아니라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캐빈의 각 모델에는 고유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모델은 독특한 타입의 정신과 외모를 가진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젊고 신선한 외모 덕분에 고용된 여성들은 좀 더 스포티하고 젊은 디자인과 연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세련되 보이는 다른 모델들은 우아한 이브닝 꾸뛰르 디자인에 선호되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캐빈의 모델은 시즌 컬렉션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발망의 시작 스케치에 영감을 불어넣고 그렇게 시작한 순간부터 꾸뛰르 제작의 모든 단계에 연결됩니다. 모델의 이름은 드레스에 꿰매어진 리본에 적혀 있었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디자인은 특별히 그녀에게 제일 잘 피팅되고 어울리도록 테일러링과 스타일링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디자이너에게 더 많은 영감을 준 모델일수록 그녀가 꾸뛰르 쇼에서 선보이게 될 디자인의 수는 더 많아졌습니다.

또한 캐빈 모델은 피팅 작업을 하지 않을땐 종종 고객을 위한 데일리 쇼에 참여했습니다. 발망의 데일리 쇼는 매일 오후 3시에 있었습니다. 또한 오전(보통 오전 10시경)에는 몇 가지 특정 디자인만 보길 요청한 고객을 위해 좀 더 개인적인 프리젠테이션이 있었습니다.

모델과 드레서가 쓴 글에 따르면 너무 덥고 너무 붐비는 백스테이지와 캐빈에서의 생활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걱정으로 가득했고 때로는 긴장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 당시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미국 사진작가 마크 쇼(Mark Shaw)가 1954년 라이프 매거진을 위해 촬영한 놀라운 포토 시리즈를 확인하세요,  그는 쇼를 위해 모델이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발망 캐빈을 촬영했습니다. 물론 여성과 의상 모두 아름답지만 잔뜩 붐비는 공간에서 여성들이 발망 고객들 앞에서 선보일 다음 턴을 위해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으려는 긴장감과 뜨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1 / 11

초창기 발망 쇼

전후 직후 파리의 오뜨 꾸뛰르 패션쇼는 오늘날 우리가 보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피에르 발망의 초창기 꾸뛰르 프레젠테이션은 프랑수아 프리미에가 44번지의 하우스 살롱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벽에 거울과 그림이 걸린 귀족적인 거실처럼 디자인된 프레젠테이션 공간에 게스트들이 작은 금색 의자나 불편한 소파에 앉았습니다.

시끌벅적한 런웨이 사운드트랙은 확실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 번에 한 명의 모델이 천천히 공간을 돌아다니면 게스트가 제품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모델에게 돌아보라고 요청하거나 때로는 손을 뻗어 패브릭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델은 자신이 입고 있는 디자인의 번호가 적힌 카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보통은 이 번호와 디자인 자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지네뜨 스파니에가 영어와 프랑스어를 통해 확성기로 전달했을 것입니다.

BALMAIN PODCAST

그리고 앞줄의 좌석이 인플루언서나 리얼리티 스타에게 주어지지 않았던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데일리 쇼는 마케팅 행사가 아니라 판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목표는 단순히 구매자에게 제품을 직접 선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종종 하우스의 판매 직원이 가장 중요한 고객 가까이에 서서 쇼를 보면서 속삭이거나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때마다 고객이 관심이 갖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객이 어떤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확실히 밝히면 판매직원과 구매자가 탈의실로 함께 가서 하우스 모델이 개별적으로 선보이는 제품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최종 구매는 6주 정도에 걸쳐 진행되는 일련의 꾸뛰르 아뜰리에 피팅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프랄린(PRALINE)

대부분의 쇼룸 모델과 달리 프랄린(Praline)은 실제로 전후 프랑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1921년 버스 운전사인 아버지와 장갑 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있는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쟈닌 마리 루시엔느 사니(Jeannine Marie Lucienne Sagny)였습니다. 그녀 이전과 이후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프랄린은 파리에 가서 스타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원래는 쇼핑걸, 그 후에는 속기사로 일했던 그녀에게 마침내 발망과 크리스찬 디올이 함께 디자인하고 있던 루시앙 렐롱에서 하우스 모델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발망과 프랄린은 매우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발망은 그녀를 "파리 부랑아"로 비유하면서도 그녀에게서 "여성적 매력의 화신"과 "굉장한 매춘부가 지닌 장엄한 우아함"도 보았습니다. 렐롱에서 발망은 그녀가 한 스타일에서 다른 스타일로 즉시 변신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비치 의상을 입고 소년 같은 매력을 풍기는가 하면  몇 분 후에는 긴 가운이나 고급스러운 모피를 입고 우아한 귀족으로 변신하여 쇼룸으로 걸어나갔습니다.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프랄린은 루시앙 렐롱을 떠나 발망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피에르 발망은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쟈닌과 같은 이름은 너무 "평범하다"고 느낀 발망은 핑크 및 화이트 가운을 입고 꾸뛰르 쇼를 마치는 그녀를 보고 나서 그녀가 "프랄린처럼 달콤 쌉싸름하다"고 말했고 그렇게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녀는 항상 광대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남다른 캐릭터의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전혀 예측불가능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가령, 그녀는 때때로 공연 몇 시간 전에 사라지는 바람에 발망 팀원들이 그녀를 찾아 허둥지둥 도시 전역으로 찾아 다니도록 만들었습니다. 한 번은 기차역에서, 또 한 번은 오를리 공항에서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두 번 모두 그녀는 티켓을 손에 들고 파리에서 재빨리 벗어나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죠, 맞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하우스의 꾸뛰르 드레스가 그녀를 위해서만 피팅되고 재봉되는 순간이 온 후에야 발망 쇼룸을 떠났습니다. 그 전에는 피팅을 놓치는 꿈을 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에르 발망은 그녀를 대신할 다른 모델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변덕과 불안정성 때문에 그녀와 피에르 발망은 항상 매우 가까웠지만 상당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프랄린은 프랑스에서 진정한 유명인으로서의 지위를 얻은 몇 안 되는 파리 쇼룸 모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에디 콘스탄틴(Eddie Constantine)이 프랄린에 대해 작곡하고 쟝 사블롱(Jean Sablon)이 부른 히트송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베스트셀러 자서전인 “프랄린: 파리의 모델(Praline:Mannequin de Paris)”은 그녀의 나이 서른 살에 출판되었습니다!

내내 발망에서 거둔 모델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영화 배우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는 몇 번 파리지앵 꾸뛰르 모델 역할로 영화의 단역에 캐스팅되었었고 나중에는 실명인 쟈닌 마르세이(Janine Marsay, 그녀의 남편인 마셸 마르세이도  배우였습니다)로 몇 편의 프랑스 영화에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교통사고로 인해 1952년 3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발망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파리의 거대한 성 아구스틴 교회에서 열린 그녀의 장례식 미사에서 그녀의 관은 핑크 로즈로 완전히 덮여 있었고 구경하러 온 엄청난 수의 군중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례식은 미디어 이벤트였으며 당시 모든 파리의 매거진들에 의해 다루어졌습니다.

브론웬 푸(BRONWEN PUGH, 일명 레이디 아스토르)

다른 모든 꾸뛰르 하우스의 모든 모델과 마찬가지로 발망 캐빈의 모든 구성원에게는 수행 할 특정 역할이 있었습니다. 피에르 발망은 자신의 다양한 디자인을 최대한 잘 보여주기 위해 그의 캐빈에 두고자 했던 기본적인 두 가지 타입의 모델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타입은 "무례하고 건방진 우아함"을 지닌 사람으로 정의되었습니다. 프랄린은 그 역할의 완벽한 예였습니다.

발망 캐빈에 있는 다른 타입의 모델은 클래식하고 우아한 모델이었습니다. 귀족적이며 "사교계에서 익숙한 세련된 여성"으로 보여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브론웬 푸(Bronwen Pugh)는 그 역할을 확실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거만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태평함과 일종의 "난 이런것들에 너무나 능숙해"라는 태도는 그녀를 독특한 존재로 차별화시켜 주었습니다.

브론웬은 1930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판사의 딸로 중상류층이었던 그녀는 아홉 살 때 전통적인 웨일즈 언어와 문화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보내졌습니다. 그 과정을 마친 그녀는 배우가 되고자하는 꿈을 가졌습니다. 스피치 앤 드라마 센트럴 스쿨에 등록했지만 (거의 6피트에 이르는) 그녀의 키가 영화나 무대에 서기에는 너무 크다는 말을 듣고는 드라마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습니다.

졸업한 후 교직원 직책을 맡았지만 그녀가 그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만 분명해졌습니다. 그녀는 그 일 대신에 런던 디자이너들을 위해 모델링 작업을 했고 임신 휴가 중인 인기 호스트를 대신하여 BBC 텔레비전에서 사회를 보는 일을 했습니다. BBC 일이 끝난 후인 1956년, 그녀는 런웨이 쇼를 보기 위해 로마로 날아갔고, 그녀를 보자마자 고용하기를 원했던 발망을 위해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발망의 생각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너무 크고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발망의 어머니 프랑수아즈 발망(Françoise Balmain)과 하우스의 책임자인 지네뜨 스파니에 둘 다 그녀의 고용을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스파니에는 그녀가 아담스 패밀리의 멤버같이 보인다고 다소 심술궂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하우스에 완벽하다고 확신한 발망은 시간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그는 그녀가 제 2의 가르보가 될꺼라 확신했고 그녀에게 스웨덴 여배우의 영화와 스타일을 공부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브론웬은 그 과제를 해냈습니다.
 

BALMAIN PODCAST

그녀의 키와 창백한 피부톤, 두꺼운 브라운 헤어와 밝은 녹색 눈, 그리고 가르보와 같은 귀족적인 외모 외에도 브론웬은 하우스 프레젠테이션 동안 보여준 매우 독특하고 강렬한 워킹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패션 평론가 으제니아 쉬파르(Eugenia Shepard)는 한 쇼에서 퍼 코트를 입은 그녀를 두고 "마치 그녀가 직접 죽여서 입고 집에 있는 자신의 파트너에게로 돌아온것 같다”며 브론웬의 거만한 존재감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했습니다.

1959년, 고통스러운 이별에서 회복 중이던 그녀는 윌리엄 아스토르(William Astor)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빌(Bill)” 이라고 즐겨 불렀던 아스토르는 공식적으로 아스토르 자작 3세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그녀보다 22살이 많았고, 두 번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1년 후 그들이 결혼했을 때 영국 언론은 웨일스 출신의 파리 꾸뛰르 모델이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의 남자와 결혼했는데 우연히도 그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 중 한 명이라는 이 스토리를 좋아했습니다.

네, 빌은 아스토르일때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작이자 보수당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맨하탄 중심부의 여러 블록을 소유한 아스토르 가족 신탁의 상당한 지분을 포함하여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런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및 미국 전역에 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중 클리브덴으로 알려진 거대한 템스 강의 궁전 부지가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BALMAIN PODCAST

아스토르와 클리브덴은 60년대 초 영국을 뒤흔든 프러퓨모 스캔들의 핵심 열쇠였습니다. 프러퓨모 스캔들에는 러시아 스파이, 아름다운 모델(브론웬), 토리당의 부자 친구(빌), 정부 장관 및 많은 섹스 스캔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스캔들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현대 영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한 몫 했으며 빌과 브론웬을 포함한 상당수의 경력과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프러퓨모 스캔들과 최근의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 스캔들 사이에서 많은 유사점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권력자들이 많았고, 적절한 설명이 없는 갑작스러운 자살이 있었습니다.

결국 자작과 레이디 아스토르는, 자신들은 영지 벽 뒤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면서 하층민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거리를 두고 한 가지만을 설교했던, 부패하고 부정직한 엘리트의 또 다른 한 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프로퓌모 사건은 아스토르에게서 결혼 생활과 런던 사회에서의 지위를 앗아갔습니다. 대중은 빌을 초라한 플레이보이이자 간통자(또는 적어도 바보)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런던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습니다. 아스토르 자작은 런던을 떠나 1966년 바하마에서 "상심한 체"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아스토르 자작과 워드의 관계가 무엇이든간에 브론웬 푸는 잘못 판단했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유죄의 증거는 없었던듯 합니다.
아스토르의 죽음 이후 브론웬은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프랑스 예수회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탱의 철학에 매료되어 천주교로 개종했습니다. 아스토르의 유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두 딸과 함께 서리로 이사했습니다. 그녀는 심리 치료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결국 옥스퍼드에 있는 종교 실험 연구 센터의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프랄린의 히트곡

이번 에피소드 동안 흐른 곡은 발망의 스타 중 한 명에 대한 1950년대 초 히트곡의 번역된 가사에 린 예거(Lynn Yaeger)가 자신만의 완벽한 해석을 더한 노래입니다 : 프랄린(PRALINE) 파리에는 상주 모델로 일하는 아름다운 여성(및 남성)이 많았지만 프랄린만큼 유명해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쓴 히트곡을 가졌던 사람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이 1951년 곡은 에디 콘스탄틴(Eddie Constantine)이 작곡하고 쟝 사블롱(Jean Sablon)이 불렀습니다. 멜로디는 "잠깐만요, 프랄린이 누군지 모른다구요?(wait, you don’t know who Praline is?)"라는 놀라운 목소리의 반응으로 시작됩니다. — 그런 다음, 발망의 스타 모델로서 프랄린이 보내는 하루를 따라가는 노래가 이어집니다. 아침에 샹젤리제를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쇼가 이어지는 힘든 하루(그럼에도 그녀가 항상 완벽하게 관리된 모습을 유지하는)동안, 그리고 마지막에는, 피곤한 가운데 밤에 외출하자는 말에 설득당한 그녀가 가수와 사랑에 빠지게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가수는 청취자들에게 자신이 이제 프랄린과 약혼한 행운아라는 사실을 알리며 곡이 끝납니다. 그리고 삶은 아름답습니다! 

Sur les Champs Elysées
Ses cheveux tout bouclés
Elle est fraîche et jolie,
C'est Praline regardez-la marcher
Elle a l'air de danser
Sur le coup de midi c'est Praline
Elle est toujours bien habillée
On dirait qu'elle est riche
Bien chapeautée, chaussée, gantée,
Elle a même un caniche
Car elle est mannequin
Du velours au satin
Elle pass' la journée, c'est Praline
Une robe du soir, le manteau rayé noir,
La robe de mariée, c'est Praline
Huit heur's tout' seule et fatiguée
Elle rentre chez elle
Demain il faut recommencer
Elle oublie qu'elle est belle
Sur les Champs Elysées
Des Messieurs distingués

Feraient bien des folies pour Praline
Ell' fait " non " gentiment
Ell' ne veut qu'un amant
" Et ce s'ra pour la vie " dit Praline
Le soir où je l'ai rencontrée
Ell' m'a fait un sourire et puis
On est aller danser
Après... j'peux pas vous l'dire
Depuis tout a changé nous sommes fiancés
Et la vie est jolie Ah! Praline
On va se marier c'est banal à pleurer
Mais c'est moi qui souris à Praline
A ma Praline
 

PRALINE
SUNG BY JEAN SABLON
℗ 1951 Parlophone / Warner Music France, a Warner Music Group Company
Composer: Bob Astor
Composer: Eddie Constantine
Writer: Francois Jacques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1 / 3

지네뜨 스파니에(Ginette Spanier)는 발망의 전설적인 장소인 프랑수아 프리미에가 44 번지의 인상적인 중앙 계단 바로 위 책상에서 30년 넘게 발망 하우스의 일상 업무, 물류, 판매, 프레젠테이션 및 스케쥴을 감독했습니다. ©Balmain

몇몇 하우스 모델 등을 포함한 초기 발망 팀원들의 단체 사진. ©Balmain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BALMAIN PODCAST

1 / 2

BALMAIN PODCAST

1940년대 후반 발망 특별 프레젠테이션 중 피에르 발망과 프랄린(Praline). ©Balmain

    • Photo Credits:

      01 : Photo of Ginette Spanier, Balmain house model Marie-Thérèse, and Pierre Balmain from a CBS interview broadcast on American TV on January 8, 1960. Copyright Free. Source: Wikipedia Commons
    • 02 : Ginette Spanier with Pierre Balmain. ©Balmain
    • 03 : Ginette Spanier (standing) directs some of the members of Balmain’s Cabine of in-house couture models. ©Balmain
    • 04 : Ginette Spanier working inside the Cabine (backstage) with the house dressers, models and crew, during a Balmain haute-couture presentations. ©Balmain
    • 05 : Ginette Spanier, backstage in the Balmain Cabine, directing the house’s team of models, dressers and assistants during one of Balmain’s daily haute-couture presentations. ©Balmain
    • 06 : A photo from one of the Balmain daily haute-couture presentations. ©Balmain
    • 07 : Ginette Spanier, in Balmain showroom, closely inspecting one of the house’s latest designs. ©Balmain
    • 08 : Images, from the 1940s, of Praline, wearing Balmain gowns ©Balmain
    • 09 : Images of Bronwen Pugh, wearing Balmain. ©Balmain
    • 10 : Praline and Pierre Balmain. ©Balmain
    • Credits :

      Balmain Creative Director: Olivier Rousteing
    • Audio: This Is Your Life, 09.02.1972: Courtesy of Ralph Edwards Productions, TIYL Productions & Fremantle
    • Special Podcast Guest: Lynn Yaeger
    • Episode Direction and Production: Seb Lascoux
    • Balmain Historian: Julia Guillon
    • Episode Coordination: Alya Nazaraly
    • Research Assistance: Pénélope André and Yasmine Ban Abdallah
    • Digital Coordination/Graphic Identity: Jeremy Mace
    • Episode researched, written and presented by John Gilligan
    • To explore further:

      Pierre Balmain: My Years and Seasons, (Doubleday, 1965)
    • Ginette Spanier: It Isn’t All Mink (Collins, 1959 and V&A Publishing, 2017)
    • Ginette Spanier: And Now It’s Sables (R. Hale, 1970)
    • Ginette Spanier: Long Road To Freedom (R. Hale, 1976)
    • See acast.com/privacy for privacy and opt-out information.